방심은 금물, 꺼진불 살펴야(2002 한·일월드컵 3~4위전)
힘들 때 한발짝 더 뛰고, 잘 나갈 때 겸손하라는 말이 있다. 2002 한-일월드컵 3·4위전인 한국과 터키의 대결(6월29일). 관중석에서는 형제의 나라 터키라는 대형 휘장도 등장했고, 기대치 못했던 4강행에 축구팬들도 가슴이 붕 떴던 일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갸우뚱한 것은 터키가 형제의 나라라는 주장이다. 6.25 때 참전했기 때문이라는데, 그렇게 따지면 훨씬 병력을 많이 파견한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도 다 형제의 나라가 돼야 한다. 그리고 축구에서 꼭 가족관계를 따질 이유가 있는가?) 아뭏든 분위기 좋게 시작한 경기가 곧 축구 역사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한국의 킥오프로 시작된 경기에서 중앙 수비수 홍명보가 공을 받았고, 받은 공을 오른쪽 수비 유상철에게 넘겨주었지만 공을 잡은 유상철이 주춤거리면서 가로채기를 당한다. 다부진 터키의 공격진이 공을 패스하자, 주 득점원 쉬퀴르는 왼발 슈팅으로 가볍게 첫골을 올린다. 붉은 악마 등 관중들은 물론이고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축구팬들도 눈깜짝할 새 벌어진 실점상황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공식 기록으로 11초만에 터진 이 골은 국제축구연맹(피파) 월드컵 축구 최단시간 골로 등재돼 있다. 종전기록은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체코-멕시코 경기에서 체코의 바츨라프 마세크가 터트린 15초만의 골이다. 피파 기록을 보면 이밖에 25초골(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독일-오스트리아전), 28초골(1982년 스페인 월드컵 영국-프랑스전), 31초골(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프랑스-이탈리아전) 등 본선 무대에서 1분 안에 터진 11번의 경기가 있다.
한국과 달리 북한 대표팀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이탈리아와 8강전 때 초단시간 골을 터트린 것으로 나온다. 북한의 박승진이 전반 50초 만에 첫골을 기록한 것이다. 이어 전반 22분 이동운이 추가골, 25분 양승국의 3번째골로 북한은 완전히 승리감에 도취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27분부터 터진 에우제비오의 4골과 조제 아우구스토의 막판 쐐기골로 아시아팀의 기적을 노렸던 북한의 꿈은 5-3 역전패로 마감된다. 2002년 남한은 1분 이내 터진 골의 희생자가 됐고, 66년 북한은 1분 이내 터진 골의 주인공으로 처지가 다르다. 하지만 둘다 경기 결과에서는 패배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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